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정리하고 계신 선배,

 

세상에는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동물은 없을 것입니다.

대개는 죽음의 한계에 다다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도록 담담

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은 젊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에 직접보고 느낀 것이

있어 대선배님 근황을 전해 봅니다.

 

3월7일 오전, 음력으론 2월7일입니다.

강남의 선능역 4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1회 선배님들이 만난다는 정보에 따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 볼 심산으로 찾았던 것이지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중년의 여인이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문 앞쪽으로 어르신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여인이‘어떻게 오셨습니까?’

‘이종성님을 뵙기 위해…’

일순간 말이 없어지며 먼 산을 보듯이 벽을 쳐다보고 있는 여인,

그리고 침묵을 지키고 묵묵히 앉아 계신 어르신,

순간 느낌이 이상해졌고,

‘어디 가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어떤 이유로…?

‘후뱁니다’라고 하니…

병원에 계십니다’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는 이종성 선배님,

현재 1회 동창회 회장을 여러 해 맡고 계신 분이며,

매사에 철저하고 완벽한 것이 몸에 배신 분으로 자상하기로 따지자면 두 번째 가기가 서러울

정도로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모든 동문의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성남중앙병원에 입원을 하셨으며,

오늘 모임에 참석하시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못돼 참석을 못하셨고,

삶이 얼마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문 앞에 앉아계신 어르신을 가리키며 하는 말,

‘동창이신데…’

권오현 선배님이셨습니다.

점퍼를 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계시기도 했지만 젊어 보이셨습니다.

한 동안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한분, 한 분 모이시니 모두 여섯 분이 나오셨습니다.

인사를 나누고는 이종성 선배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종성 선배님은 군생활을 20여년 하셨고,

전역 후 이런저런 일을 하시다가 특별한 인연에 의해 선능역 인근에서 조그마한 사무실을 갖추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계신 독실한 천주교 신자십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시었고,

조용하고 공기 맑아 좋다는 성남 남한산성 끝자락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정오를 넘긴 시간이기에 음식점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강한 선배님들이셨습니다.

친구가 건강과 관련해 편식을 하기 때문에 인근의 중국집을 단골로 정하고 다시신다고 했습니다.

“天天”[tiāntiān ]

티엔티엔이라고도 부르고 있더군요.

조용하고 친절한 음식점이었습니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룸으로 안내 되어 자릴 잡았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음식을 주문해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방향을 바꾸어,

이제는 모두가 옛날얘기가 된 선배님들의 추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성동역에서 연촌역까지 기차를 주로 이용해 통학을 했다는 선배님들이었습니다.

경동시장 자리가 성동역이었다는군요.

그리고 지금의 광운대역이 연촌역이었고…

당시는 조선무선중학교로 6년제 학제에 따라 1학년으로 입학을 했고,

1학년에 입학한 학생은 봉래동에서 학업을 시작했고,

3년이 흐른 다음 4학년으로 편입한 분들은 지금의 월계동으로 학교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엔 신학기가 5월1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6학년으로 올라와서는 두 달도 채 공부 못하고 6‧25전쟁이 났고,

9‧28수복 후 9월30일에 졸업장을 나누어줘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졸업식 행사 같은 것도 없었고,

졸업장엔 동국무선고등학교로 기록되어 있었다내요.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군입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몇몇 친구들은 장교로 지원해 많은 세월을 군에서 젊은 세월을 보냈으며,

그 중 이종성 선배님도 직업군인으로 중령까지 있었다는군요.

 

식사가 끝나고 모두가 병원으로 문병을 가신다기에 함께갔습니다.

일부는 김상현 선배님 차로,

나머지는 택시를 타고 성남중앙병원으로 갔지요.

선배님들이 주머니를 털어 봉투를 준비하셨고, 음료수도 샀습니다.

마침 총동문회장과 통화가 되어 류희근 회장의 이름으로 쾌유를 비는 미의 금을 전달할 수 있었

습니다.

병실을 찾아 선배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선배님의 얼굴이 너무나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병을 아는 순간부터 지금의 심경까지를 소상하게 친구들에게

얘길 하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 병원에서 위암이란 판정을 받고,

의사가 수술을 할 것을 권유했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거절했답니다.

의사가 검사결과에 의해 수술을 권유하는 이유로는,

당시 상황으로 봐 수술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얘길 했고,

수술을 안 하시면 1년 정도의 생명 여유만 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선배님은, 1년만 살겠다고 선택하셨답니다.

그 이유는,

나이 80살이 넘었고,

수술을 해 더 이상 산다는 것은 고맙지만,

언제, 어느 때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처지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1년만 더

살아도 고마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고령으로 가면 갈수록 앞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부인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삶을 정리하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고마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이어나가면서 선배님의 결심을 밝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은 위벽에 상처가 심해 출혈이 있고, 혈변을 보며,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 포도당을 맞고,

혈액을 투여하고 있는 상황까지 왔기 때문에 아들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실 사용 가능여부를 확인하라고…

2주 정도면 가능하기 때문에 그곳으로 갈 것이랍니다.

그곳엔 신부님도 계시고,

수녀님도 계신 곳이기에 자신으로선 안성마춤이라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모습이 너무도 담담해 보였습니다.

담담하다는 것은,

동요 없이 차분하고 침착한 것을 나타내는 말인데 정말 저럴 수 있을까를 내 자신이 의심할 정도

였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강남성모병원에서 마지막 호흡을 마치면,

장례는 지금의 성남중앙병원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몇몇 지인들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그 분들 왕래가 편한 곳이 이곳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나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정리를 하셨으며,

병실을 나오기 전에 하시는 말씀이…

동창회를 잘 이끌어나갈 친구를 뽑아서 더 잘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빨리 그곳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완벽하게 들렸기 때문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밖으로 모두가 나왔고,

선배님들은 별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시기에 이름을 잊었습니다만 외대앞에 사신다는 한 선배

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귀가를 했습니다.

잡음이 심한 지하철 안에서 선배님 하시는 말씀이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이종성 선배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야! 위암이 자연치유 되어 이젠 음식을 맘대로 먹을 수 있어!’라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들리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런데… 말문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동창회를 걱정하시던 선배님,

모교에 관심을 보이시던 선배님,

1회이기 때문에 잘 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선배님,

모든 것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열심히 병수발을 하고 있는 부인과 딸의 모습도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종성 선배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희망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었으며,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하루를 정리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님이 하시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남자들은,

“동문회, 동창회가 있어 좋은데,

왜, 여자들은 그런 것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병실을 나서며 선배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

“다음 달 모임에서 만나자!”